2025-03-21
들판
아래는 내가 20대 초반일 때에, 브레드 앤 퍼펫Bread and Puppet을 알게 되고, 구글에 검색해 찾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예외 없이 밝은 기운을 주는 사진이다.
근 몇년 간 나의 활동에 자주 맴도는 단어들 —학교, 배움, 놀이, 커뮤니티, 월드 와이드 웹, 네트워크, 주체성 등—을 생각하면 나에게 들판이 떠오른다. 그곳은 언제나 오뉴월쯤의 화창한 계절, 살짝 쌀쌀해서 가디건을 입었다 벗었다 할만한 날씨, 잔디밭 위에 띄엄띄엄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속도와 자세로 움직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진 채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모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있는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다 못해 내가 언젠가 그런 곳에 간 적이 있었던가 싶기까지 한 그곳과 나는 종종 우연히 만난다. 작은 이파리를 들여다볼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때, 잠이 쏟아질 때 곧장 낮잠을 잘 수 있는 상황과 같은 그런 둘도 없는 순간들은 모두 그 들판과 닮았다. 또 아름다움을 정의할 때, 누군가가 나의 미래에 대해 물을 때 나는 내가 머릿속으로 수십 번 방문한 그 들판을 묘사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적다. 들판은커녕 공원에서도 난감해하며 벤치를 찾아 앉거나 아이폰을 가로로 들고 양쪽 팔꿈치를 몸통에 붙여 엘리엇 코스트Elliott Cost에게 보낼 원 미닛 파크One Minute Park 영상을 찍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내가 아는 들판은 보라돌이, 뚜비, 나나와 뽀가 뒤뚱거리던 텔레토비의 들판, 마리아 선생님과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들판, 컴퓨터 부팅 소리와 함께 띄워진 윈도우 배경 화면의 들판이 거의 전부다. 들판을 고작 이만큼 경험하고 나는 덥석 그곳을 낙원으로 삼았다.
들판에는 문이 없고, 계단이 없고, 좌석이 없고, 길과 방향이, 모서리와 천장이 없다. 문 없이 드나들고, 계단 없이 오르내리고, 좌석 없이 앉는다. 길과 방향 없이 움직이고 모서리와 천장 없이 머문다. 경계도 분류도 안내 방송도, 그리고 또 무엇이 없는지 나열하다 보면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칭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2025년 1월 10일부터 3월 21일까지 버드콜에서 진행한 '리딩 메이트'에서 다음 텍스트를 읽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