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3
맥도날드 사용자 시나리오
가까운 누군가에게 다음과 같이 묻고, “점심 먹었어?”
그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 “맥도날드”
나는 그가 보낸 30분 이내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단, 맥 딜리버리로 시켜 먹은 것이 아니라면)
맥도날드에 들어서고 카운터 쪽으로 향하며 메뉴판을 올려다보는 고개의 움직임, 카운터 안쪽에 보이는 직원은 조리하고 음식을 배정하느라 분주하네, 아 키오스크를 사용해야 하는구나 하며 키오스크 앞에 서기까지의 동선, 영 매번 어딘가 모자란듯하고 유려하지 않은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 빅맥 세트 하나를 담고 음료는 커피로 교체하기 위해 커다란 버튼들을 오가며 터치하는 강도, 결제하기를 누르면 다시 한번 사이드 메뉴를 정녕 추가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팝업창, 어머 치즈스틱? 추가할까? 혹하는 마음, 에이 참자고 하며 신용카드를 투입하면 뜨는 질문, 영수증을 출력하시겠습니까? 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아니오를 누르려 했는데 예를 눌러버려 나온 영수증과 번호표를 툭 뽑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 핸드폰을 들어 한두 통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고 있으면 패스트 푸드의 의미에 충실하게 이내 딩동 하며 화면에 뜨는 번호, 갈색 트레이를 받아 들고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다 그나마 덜 지저분한 테이블을 골라 앉아 스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미디움 프라이를 종이 위에 쏟아붓고 빅맥을 감싼 유산지를 벗기고 입을 크게 벌려 먹는 식사. 우적거리는 15분쯤이 지나면 빈 유산지와 냅킨, 케찹 껍데기가 뒹구는 트레이를 쓰레기통에 털어버리기까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ANT 이론의 관점에서 위 묘사에 언급된 모든 명사, 동사, 형용사는 각각이 하나의 행위자이며, 이들은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처럼 규격화된 경험에서도 각 노드는 활발히 작동하며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맥도날드의 인프라를 유지한다. 매장 내부에서의 물리적인 경험뿐 아니라 맥모닝, 맥플러리, 맥너겟과 같은 명명 전략, 소비자의 어린 시절을 겨냥한 해피밀, 매일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 30분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시간대를 제한해 판매하는 맥모닝 등을 통해 사용자의 언어와 생애주기, 생활 패턴에 침투하며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그로써 네트워크에 유의미한, 다시 말해 연결이 유실되지 않을 행위자를 포섭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맥도날드에 대해 서너 시간 생각하고 있자니, 조만간 맥도날드에 방문해 주문할 메뉴를 고르고 있다.
- 치즈 버거 세트(소다를 아이스 커피로 교체)
- 맥 너겟(스윗 앤 사워 소스 선택)
- 애플 파이
- 소프트 아이스크림
몇일 이내 맥도날드에 방문한다면, 그 사진을 아래에 덧붙이겠다.
2025년 3월 14일부터 5월 23일까지 버드콜에서 진행한 '리딩 메이트'에서 다음 텍스트를 읽고 썼다.